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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시대의 거장 카라바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빛과 그림자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킨 그는 강렬하고 참 진한 작품은 자연주의 특징으로 때로는 거친 사실주의로 뿐만 아니라 테네브리즘까지 나아가는 명암 기법의 강한 사용으로써 17세기 회화에 변화를 가져왔다.

목차

    카라바조 생애 및 작품 설명 바로크 미술

     

     

     

    카라바조의 생애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는 그의 이름이다. 그는 이탈리아 화가로 1571년 9월 29일에 밀라노에서 출생했다. 그의 이름이 미켈란젤로와 같아서 소년시절에 살던 밀라노에서는 도시의 이름을 따서 카라바조라고 불러지게 되었다. 카라바조의 아버지는 건축가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의 나이 6살에 어미는 18살에 그를 떠나가고 만다. 로마에 도착했을 때 그는 가난뱅이였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기존 화풍을 깨는 새로운 기법으로 그리고 그만의 독창적이고 강렬한 명암법으로 회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600년대 초반에 그는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다 교양 있는 후원자들 가운데서 작업하며 그는 화려한 주문을 수주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매우 높은 지위의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당대의 문제아였다. 그는 술을 좋아했고 늘 싸우며 상습적으로 도박을 했다. 뿐만 아니라 칼로 사람들을 위협했다.

    이런 그의 거치고 문제적인 행동으로 늘 시비와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그는 무려 6년 동안 15번이나 고발되어서 수시로 감옥에 갔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좋아했던 권력층의 도움으로 그는 풀려나곤 했다. 1606년에는 교황령 재판소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카라바조가 결투에서 상대가 죽을 정도로 부상을 입히고 그는 로마에서 추방당했다.

    그리고 나폴리 몰타 시칠리아에서 망명생활을 이어 나가다 38살의 나이고 사망하게 되는데 그는 이뿐 아니라 동성애자로 더 나아가 소아 성애자였다. 이일로 결투를 벌이고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서 탈출해서 현상수배를 받기도 했다.

    비평가들 사이에서 잊힌 기 시기 이후 카라바조의 천재성이 그의 평판과 독립적으로 제대로 재평가받은 시기는 20세기 초였다. 나중에 대중적인 인기는 여러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져서

    그리고 전시회들이 열리면서 그의 이미지가 새롭게 재조명되었다. 아무튼 카라바조는 바로크 미술을 연 사람이다. 그의 이런 작품성은 바로크 시대의 거장인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것만큼은 확실하다.

     

    카라바조의 작품 설명

    의심하는 도마

    의심하는 도마는 캔버스에 유채화로 107*146cm크기이다. 이 작품은 1601~1602년 작품으로 독일 포츠담 상수시 회화갤러리 소장이다. 이 작품이 유명한 것은 성경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 그는 그 장소에 있지 않았고 나중에 예수님을 만난 도마는 자기는 창에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봐야 믿을 수 있다고 말하며 의심을 했던 도마이다. 이 작품은 다른 그림과 비교해서 예를 들어 뒤러의 그림을 보아도 다른 그림에는 예수님에게 뒤에 비치는 후광이 있는데 이 작품에는 그런 게 없다 또한 다른 그림에는 도마는 성직자 복장의 모습에 경건한 모습들이지만 이 그림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카라바조의 그림에는 예수님 뒤에 후광도 제자들의 복장도 당시 어부 등이 입었던 옷을 그린 것이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리얼리즘이다.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예수님의 찔린 옆구리와 의심하는 표정들의 묘사이다. 카라바조는 바로 이런 극적인 내용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림에서 가장 밝게 드러내었다. 예전의 그림들은 이런 부분을 명암을 햇빛으로 표현하였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은 마치 무대의 조명과 같은 표현 방법이다.

    역사의 무대의 주인공들을 위해서 조명을 비추고 주인공들에게 집중되도록 하는 그림 형식입니다. 카라바조는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그림에 조명 효과를 주는 것이다.

    바로크 미술이 바로 르네상스 미술의 원근법과 인체의 비례등의 표현기업을 어어오면서도 웅장하고 역동적인 화려한 미술의 세계로 성격이 바뀌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작품처럼 어두컴컴한 배경에서 중심인물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해 주는 명암 대비가 확실한 작품들이 바로크 미술의 특징입니다.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는 카라바조가 1601년에 그린 작품으로 캔버스에 유채화이다. 지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영국에 소장중이다. 이 그림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시면서 함께 식사를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림에는 과일이 등장한다

    과일 중 석류는 부활을 상징하며 썩은 사과와 색이 변화 무화과는 인간의 최초의 죄인 원죄를 상징하기 위해서 그렸다. 이 그림은 아주 실제적이고 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 그림에서 가슴에 조개를 붙인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는 수도사이다. 그리고 옆에  서있는 사람은 여관주인으로 무신론자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에 놀래서 기겁하게 보이는 뒷모습으로 등장하는 동네 청년이다.

    그들에게 신성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을 드러내는 것은 밝은 빛이다. 이런 조명적인 극대화를 통해서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카라바조를 빛의 마술사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나중에 렘브란트가 그린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를 생각해 보면 이 그림도 명암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그런데 카라바조의 그림과 비교해서 보면 렘브란트의 그림의 조명에서 쓰이는 조명은 쏟아지는 듯한 조명이 아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의 조명은 쏟아지는 조명으로 예수님을 표현해 싸면 렘브란트는 예수님 뒤에 후광을 그려서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식탁을 가운데 놓고 삼각형 구도의 고전적인 구도를 줌으로 침착하고 안정감의 그림이다.

    그리고 옆에서 예수님이 내가 부활한 예수다라고 했는데 여관주인은 놀라지도 않고 자기 일에만 열중한다 두 그림을 비교하면서 빛의 명암을 생각하면서 작품들을 이해하면 카라바조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된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은 1606~1607년에 걸쳐서 그린 작품으로 캔버스에 유채화이다 크기로는 125*101cm 이다. 지금은 보르게세 미술관 이탈리아 로마에 소장 중이다. 이 그림도 성경에 나오는 장면이다. 구약성경에서 다윗이 뭇매돌로 골리앗의 이마를 정통으로 맞추어 쓰러뜨리고 그의 칼로 그의 머리를 잘라 버린 스토리를 그림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그림을 한 번 감사해 보자. 그림에서 소년 다윗에 골리앗의 칼을 들고 이미 골리앗의 그의 칼로 잘라 버리고 그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다 골리앗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사실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다윗은 골리앗의 응시하며 있다.

    그림에서도 사실적으로 다윗은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골리앗은 장대한 체구의 장수로 표현된 그림이다. 그런데 골리앗의 모습은 그림을 그린 작가 자신 카라바조이다. 소년 다윗은 어린 시절 자신이고 골리앗은 지금의 자신이다. 소년은 마치 어린 시절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안쓰러운 그러나 슬픈 모습도 담겨 보인다.

    단순히 성경의 내용에다가 작가의 인생을 덮는 순간에 이 그림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응시하는 저 눈빛이 너무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나이 든 카라바조의 머리는 어느 순간 자신의 몸퉁이와 분리되어 추한 모습으로 허공에 들려있다.

    머리채는 잡힌 채 입은 벌려있고 눈은 아래로 쳐져 있으면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거이다. 이 그림은 1606년에 카라바조가 살인을 하기 이전의 그린 그림으로 그의 인생 스토리와 절묘하게 평행선을 이루는 장면이기도 하다. 삶에 있어서 이런 작품들이 자신에게 주는 감동과 메시지는 각자의 인생의 삶의 반추이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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