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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터너는 풍경화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놀라운 자연의 숭고함을 표현한 19세기 남만주의 화가입니다.  그를 가리켜 빛의 화가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유명한 화가입니다 터너의 생애 및 작품을 나눠 보겠습니다.

목차

     

    터너의 생애 및 작품 설명 노예선

     

    터너의 생애

    윌리엄 터너는 영국에서1775년 4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출생했습니다. 터너가 14살 때부터 왕립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공부를 했고 주로 수채화를 그렸습니다. 그는 네덜란드 풍경 화가들의 영향을 받고 20살부터는 주로 유화를 그렸습니다. 보통 풍경 유채화를 전시회에 출품을 했는데 터너가 27살에는 이미 그는 화가로서 성공을 정점에 올랐습니다.

    초창기에는 터너는 전통적인 풍경화를 그렸다고 한다면 예를 들어 자연광과 대기 효과 같은 것을 놀랍게 포착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영국과 유럽 등지를 폭넓게 여행을 하면서 그 여행을 통해 터너는 많은 영향과 영감을 받아 그림이 훨씬 폭넓게 자연의 숭고함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예술가로도 시간이 지남으로 더욱 성숙한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로 인상주의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여서 전통적인 풍경화에서 그의 그림의 세계를 더욱 넓혀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그림의 스타일 자체가 붓터치는 더욱 느슨해지기도 하고 미세한 디테일을 더해져서 빛과 그림자의 유희 까지도 강조하는 그림의 스타일로 변해갔습니다.

    그의 그림의 후반 인생에서도 계속하여서 선견지명적인 실험은 계속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아주 자연에 대한 웅장함과 힘이 보입니다. 자연을 더욱 멋지게 웅장하게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나타내어 실제 한 자연의 모습보다 더욱 웅장함이 표현됩니다.

    특별히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그 만에 독특한 표현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다, 하늘, 땅의 경계를 상호 작용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킵니다. 두 경계면이 서로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을 합니다. 이런 그의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그림의 스타일이 추상 표현주의와 같은 미래 예술의 기초석을 마련해 줍니다.

    그림을 통하여 자연을 맞이할 때 노라울 만큼 자연의 숭고함을 아름다움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미술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빛과 색에 대한 표현 방식은 지금까지도 많은 예술가로 하여금 수많은 영감을 선사합니다. 

    터너의 작품 설명

    그의 작품 국회의사당의 화재 1834년 10월 16일 베네치아의 대운하 이런 작품을 바라보면 그가 얼마나 자연과 빛 대기에 주목을 했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는 아버지는 이발소 주인이고 어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가정에서 출생했는데 그는 신화 정치 문학에 매우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가 이런 작품의 그림을 그리게 되는 배경을 보면 그는 여행을 자주 했기에 빛의 변화에 민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빛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상주의 화가와는 다른 작업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그림은 변화하는 날씨와 그에 따른 빛의 변화를 너무 장엄하게 표현하였기에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의 작품을 통하여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의 그림 위에서 언급한 베네치아의 대운하 그리고 국회 의사당의 화재 이런 그림은 풍경화 임에도 역사화처럼 그려진 작품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단순한 자연화경 이상의 의미를 지닌 역사의 배경이고 증인인 것입니다. 

    노예선

    노예선은 1840년 작품으로 캔버스에 유채화이다 크기는 90.8*122.6cm로 지금은 미국 보스턴 미술관 소장이다 이 그림도 역사화 같은 풍경화이다. 이 작품을 보면 가히 놀랍다. 빨강 노랑 흰색 검은색의 조합이 이리 저리 휘날리며 색칠되어 있다.

    이 그림의 혼돈의 그림 속에는 붉게 물든 하늘과 파도가 일렁거리는 바다 그리고 산채로 던져진 노예들이 바다에서 쇠고랑을 차고 허우적 거림이 보인다 붉은 바다의 색은 마치 그들의 피를 연상케 하듯 붉게 물들어 있고 거친 파도는 그들의 두려움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것 같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를 모르는 공간에서 보이는 모습들은 가히 충격적이다.

      낭만주의에게는 단순한 형태가 아닌 자연에서의 보이는 색채의 미를 찾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색의 원색들의 적나라하게 표현된 붓의 터치에서 우리는 자연의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림의 왼쪽에 짙은 어두음이 앞으로 닥칠 그림 속의 사람들의 앞날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런 그림의 화풍이 20년 뒤에 나올 인상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친것이다. 이 그림은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그린 것으로 폭풍우에 몰려오자 바다에 던져진 노예들의 모습을 너무나 사실감 있게 그린 작품이다.

    이 사건의 발생은 1781년에 발생한 사건인데 이때 그의 나이는 6살이다. 물론 이 사건에 그는 너무 어려서 나중에 이 사건에 대해서 들고 그린 그림이다. 당시에 흑인 노예를 실은 노예선 중 ZONG호는 중남미 자메이카 까지 400여 명의 흑인 노예를 싣고 항해했다.

    그러나 그 배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수많은 노예가 죽고 병들고 나머지 살아남은 노예들도 배 밑 창의 어두운 지하의 칸에서 햇빛도 못 본 체 쇠사슬에 묶여 항해한다는 것은 지옥이다. 그렇게 2~3개월의 항해에서 그들은 굶주리고 병들고 죽어 나갔다.

    그런 죽은 노예들을 그리고 병들어서 상품 가치가 없던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험처리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인간적인 그리고 인권이 묵살된 시대의 아픔을 고발하는 그림이 단순히 풍경화가 아닌 역사적 풍경화인 것이다.

    눈보라- 하버 만을 떠나는 증기선

    그의 그림들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눈보라 허버만을 떠나는 증기선의 그림이 형태도 소용돌이 치는 어지러운 구도에 강렬한 색감으로 긴장감이 고조되는 하늘과 바다 빛이 엉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림들이다.  이 그림은  1842년 작품으로 지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중이다.

    폭풍과 눈보라가 치는 바다에 배가 위태롭게 항해를 한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바다는 거세게 요동친다. 하늘과 바다 대기 모든 게 뒤엉켜서 휘몰아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렇게 장대한 느낌으로 자연의 놀랍고 장엄하고 신비로움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거기에 비해 우리의 인간은 한 없이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잔인하고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터너는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1842년에 배의 선장에게 부탁해서 자신을 폭우가 몰아치는 바다의 배 한복판에서 돛대에 묶여 변화무쌍한 자연을 자신이 직접 몸으로 경험함으로 체험적인 느낌을 그림에 그대로 녹아 있다.

    터너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눈보라를 그린다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하게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장면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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