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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의 그림의 세게 황금빛 그림의 인기 비결을 알아보고 그의 작품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그의 삶 활동배경 그리고 작품의 세계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클림트 현대 미술 황금빛 그림
    클림트 현대 미술 황금빛 그림

     

    클림트 생애 및 활동

     

    현대를 살아가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에서 1918년의 삶을 살았다. 클림트는 세계 어는 사람이나 다 그의 그림을 사랑하지만 특히 아시아계 사람들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매우 인기가 많은 화가이다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인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귀금속 세공사 일을 하는 조각가였다. 클림트의 작품 세게를 보면 금 모자이크 작업의 작품들이 많이 있다 이런 패턴은 그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1876년부터 8년 동안 오스트리아 빈의 응용미술학교에서 모자이크, 금속, 도자기, 부조 등 다양한 장식기법을 배웠다.

    크림트는 1897년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공예가인 콜로 먼 모저, 거 누가 오토 바그너, 요 제푸 마리아 올브리히 등 여러 명의 예술가들과 활동을 하였는데 그중에 19명의 예술가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던 빈 미술가협에서 분리하여 자기들만의 빈 분리파를 결성했다.

    빈 분리파의 핵심적인 부분은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통합하여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1898년에 1회 빈 분리파 전시회를 보면 그와 함께 활동하였던 로댕, 휘슬러, 크노프, 클링거 등 여러 명의 아르누보 계열의 미술가들이 활동을 하였고 그들은 큰 성공 가두를 달렸다.

    이들의 활동의 수익금으로 건립하였다. 그들의 건물에는 이런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그들이 추구하였던 예술의 세계를 이문장하나로확인할 수 있다.

     

     

     

    클림트의 작품배경설명

     

    클림트의 작품의 세계를 이해하는 단어를 꼽자면 화려한 색채와 관능미이다. 클림트의 작품 중 다나에, 유디트 등의 작품을 보면 그가 고전적 모티브로 작품을 구성하고 그렸음을 알게 된다. 그의 그림은 평면적이다 그리고 거기에 금박을 많이 덮은 패턴이 주를 이룬다.

    그에 작품은 일본 판화가인 우키요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의 세계는 화려한 색채와 관능미가 돋보인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도 힌트이다. 클림트는 매우 사생활이 난잡했다고 한다. 별명이 빈의 카사노바였다고 하니 그의 별명이 그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는 동생의 처제이자 의상 디자이너였던 에밀리 플뢰게인이었다 그들은 플라토닉 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난센스인 게 그가 사망 후에 친자 확인 소송만 14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 14건 중 4건은 정말 그의 친자로 발혔졌다. 호사가들의 소문에 의하면 클림트의 이런 바람기가 그의 예술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그는 수많은 여성들과 성적유희를 즐기면서 나온 경험들이 그의 작품세게에 그런 표정과 자세를 잉태하는 반증이다.

    그의 작품들은 오스트리아 빈 응용미술관에 가면 그의 대작들을 만날 수가 있다. 클림프는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활동했다 이 시기를 "벨 에포크 시대" 즉 좋은 시대라고 한다 그 당시 금광이 개발되고 부르주아 가 태생되면서 그들의 호사 취미로 화려하고 관능적인 미술 작품을 찾았다 이럼으로 클림프와 같은 관능적인 미술이 발달하는 시장을 만들어 준 것이다

     

    클림프의 작품 설명

     

     

     

     

    클림프의 작품- 구 부르크 극장의 관객석

     

    클림프의 초기작인 구 부르크 극장의 관객석은 당시 부르크 극장이 철거됨으로 1889년도 철거가 결정되자 극장에서는 클림프에게 기념작품을 그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클림트는 극장 건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극장 안의 객석의 풍경을 그렸다.

    이 그림의 소문이 나서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 그림을 살펴보면 250명의 유명한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통해서 그는 초창기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사실 예술가 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흐이겠지요 이런 예술가들의 이미지는 바로고난 술 가난 죽음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작품들 자해 자살과 같은 어둡고 무거운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클림트는 반대로 당대에 아주 성공하고 인정받은 화가였습니다.

    그는 이런 부정적인 단어와 멀게 아주 큰 명성과 부와 쾌락을 누리고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한 가지 아픔은 그의 아버지 그리고 동생이 모두 뇌일혈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죽음과 두려움 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클림프의 작품-철학, 의학, 법학

     

     

     

    어느 날 크림트에게 빈 대학에서 그림을 요청했습니다 빈 대학은 그에게 학문의 위대함을 그려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철학, 의학, 법학을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을 받은 빈 대학은 크림트의 자유롭고 파격적인 창작 작품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벌써 철학 의학 법학 주제가 보수적인데 그의 그림은 에로틱하니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빈 대학은 그의 그림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외설적이고 성도착적 표현이라는 이류로 기소까지 하였습니다. 클림트는 분노하였고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검열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국가의 지원 따위는 모두 거부한다" 그의 그림이 어떠했는지 살펴보면 우선 "철학"은 우주공간에 아기와 젊은 남녀 노인들이 벌거벗은 채로 서로 뒤엉켜 있습니다. 마치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기까지의 과정 바로 인생의 축소판을 그려놓았습니다.

    그의 그림의 오른쪽에는 스핑크스를 닮은 얼굴이 뭔가 질문을 던지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맨 아래에 검은 머리의 여인이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바라봅니다. "의학"은 누드의 여성과 남성 그리고 임신한 여성 노인 해골들이 서로 뒤엉켜 있습니다.

    그림의 맨 아래에는 건강의 신 '히게이아"가 외손에 이 삶에 마지막으로 마시는 레테의 강물을 접시에 담아 들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히게이아"는 사람이 태어나고 사랑하고 즐기고 죽는 것인데 의학도 이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듯 비웃습니다. "법학"에서는 등이 굽은 노인이 법정에 서 있습니다. 그 재판장 자리에 각각 진리 정의 법을 상징하는 벌거벗은명의여신이 있습니다.

    노인은 문어처럼 생긴 생물에게 생명을 빨아 먹히는 모습으로 문어는 고문자이며 처형자입니다. 클림트는
    법학을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힘과 권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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