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고독한 영혼의 초상, 꿈과 우수 위안의 절묘한 조합의 화가 모딜리아니의 생애와 작품의 세계를 알아보자 왜 그의 작품에는 눈동자가 없는 것일까? 고흐와 많은 부분은 닮은 화가 몽마르트르의 보헤미안 모딜리아니의 작품의 특징 배경 작품해석을 만나보자.

 

모딜리아니 생애 및 작품 해석

목차

    모들리아니의 생애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1884~1920년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작품은 강렬하다 그는 이탈리아 리보르노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나중에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몸이 연약해서 11살에는 늑막염. 장티푸스에 걸렸고 16살에는 폐결핵에 걸렸다. 

    모딜리아니의 어머니는 교양이 높은 여성이었다 아들이 어릴 때부터 미술의 재능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모딜리아니는 미켈리의 미술학교를 다녔다 1901년 겨울부터 이듬해까지 그는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했다 그리고 1902년에는 피렌체와 베니스에서 그림에 공부를 했다 그가 베니스에 살 때 그는 대마초 흡연을 시작을 했고 나중에 22세에 1906년에 파리로 이주를 해 1908년에 앙데팡당 전에서 "유대인 여인" 이란 작품을 출품하게 된다

    그는 특히 아프리카 조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09년에서 5년 정도는  아프리카 조각에 빠져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조각을 하기에는 그의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결핵 때문에 더 이상 조각을 하지 못하고 다시 회화로 돌아오게 된다 아무튼 그에게는 조각이든 그림이든 그가 만든 작품에 인물들은 아몬드 조각처럼 생긴 이목구비의 사람들이 독특한 눈과 킨 코 목 꼭 다문 입이 특징임을 알게 된다.

    그의 인생을 보면 작품의 세계에 잘 나타난다 그에게는 채울 수 없는 공허가 있다. 1917년 잔느 에뷔테른을 모델로 만나서 그는 그녀와 결혼하고 이듬해 11월에는 딸을 출산하게 된다 딸의 이름은 잔느이다. 그의 딸은 나중에 고모에게 입양되었고 그녀 또한 미술사를 공부를 했고 40세에 아버지 모딜리아니의 전기를 썼다

    모딜리아니는 짧은 인생을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갔는데 모딜리아니는 결혼 후 딸을 낳는 기간 동안 가장 많은 걸작들을 그렸고 그림들이 몇 점 팔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그 그림을 판 돈을 가지고 술과 마약을 했다. 1920년에 모딜리아니는 건강의 악화로 인해 36세 아직은 젊은 나이로 파리의 자선병원에 입원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작가였던 프란시스 카르고는 추도사에서 모딜리아니는 채워질 수 없는 공허를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고 말했다. 이틀 뒤 불행하게도 그의 아내도 투신자 실을 했다. 당시 그녀는 임신 8개월째였다 그의 딸은 14개월로 고모에게 입양되었다. 그가 죽고 난 다음에 그의 그림은 500배 이상 가격이 치솟았다. 모딜이 아닌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보헤미안이었고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린 몽마르트르 최고의 미남이었다.

     

    모들리니아니의 작품 해석

    여장부

    그의 작품 여장부는 남작부인을 그린 그림이다. 그의 그림의 그녀는 거만하고 도도했다 그림 속의 남작부인은 얼굴이 각져있으며 날카로운 모습이다. 당시에 그녀는 빨간 옷을 입고 있었지만 모들리니아는 그의 옷을 노란색으로 그렸고 그녀에게 받은 인상을 그렸다고 한다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장부는 캔버스에 유채화로 92*65cm 1909년 작품으로 지금은 개인 소장이다.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

    큰 모자를 쓴 잔느라는 작품은 커다란 검정 모자를 쓴 잔느가 긴 손가락을 턱에 댄체 얼굴은 살짝 기울이고 있다 얼굴은 그의 작품들이 그렇듯 갸름하고 타원형인 얼굴선, 곡선의 어깨선, 모자챙의 둥근 선이 서로 어울려져 있다 이목구비 모두 긴 손가락과 팔이 모두 곡선으로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다 부드러운 곡선 때문에 잔느는 우아해 보인다.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은 캔버스에 유채화로 54*37.5cm 1918년~1919년 작품으로 개인소장이다.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잔느 에뷔테른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잔느 에뷔테른 에서 잔느의 그림에도 그녀는 살짝 얼굴을 기울이고  의자에 살짝 앉아 있습니다. 이 그림에도 그녀의 눈동자는 보이지 않고 허공을 응시하는 듯 슬퍼 보입니다. 얼굴은 길고 눈은 옆으로 길쭉하고 코도 깁니다. 그녀의 몸매는 엉덩이와 허버지가 상당히 큽니다.

    실제로는 저렇게 생긴 사람은 없습니다. 모딜리아니는 처음에는 조각을 했었는데 그가 폐결핵을 걸려 다시 회화로 돌아온 것입니다. 기다란 타원형 얼굴 긴 코 가로로 쭉 찢어진 텅 빈 눈은 마치 아프리카 조각의 가면을 보면 상당 부분 겹칩니다.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 시대 이후의 전형적인 미는 원래 조화와 균형미입니다. 그런데 이제 간결하고 절제된 미가 등장합니다. 현대미술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 작품은 캠버스에 유채화로 100*65cm 미국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입니다.

    누워 있는 누두 (붉은 누두)

    누워 있는 누두는 모딜리아니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전시회 작품입니다. 그림에서 여인의 모습이 적나하게 드러나 있어서 논란이 되었던 작품입니다. 작품의 모습을 모면 모딜리아니의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그림 속의 여자는 따뜻한 피가 도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그림 속에 여자는 입체감이 없습니다.

    벽지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3차원의 사실 공간을 2차원의 그림에 담으려는 생각이 없어진 것입니다. 마치 한국의 추사 김정희의 작품에도 세한도를 보면 입체감이 사라진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그림은 윤곽선이 매우 명확합니다. 그는 자연스러운 조각의 선을 그림에 담아내고자 한 것입니다. 캠버스에 유채화로 60*90cm 1907년에 작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지니 마티올리 미술관 소장입니다.

     

    모딜리아니 그림의 특징 해석

    모딜리아니의 그림들은 사람들이 다 얼굴이 길고 목도 길고 선이 분명한 얼굴에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그 그림에는 눈동자가 없다. 초창기 그림인 유대여인, 슬픈 누드 등에는 눈동자가 있지만 후에는 다 눈동자가 없다. 이 그림에 왜 눈동자가 없는 걸까?

    과거의 작가들은 사실적 그림 즉 사실을 화폭에 담으려고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카메라가 나오고 사실적은 것은 사진으로 얼마든지 그 모습을 담을 수가 있다 그래서 사실을 그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사실의 모습은 화가가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도 사진의 모습을 따라갈 수는 없다 이제는 사실의 모습을 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모습의 뒷모습 눈에 보이는 사실만 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습을 담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세계에 잘 나타난다 사람은 의식만 아니라 수면 아래 더 큰 무의식의 세계가 더 두고 크게 자리 잡는다 의식은 빙산의 일각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무의식이다 라고 한 모딜리아니 오감을 결정하는 것은 눈이며 카메라 또한 눈이다.

    눈은 밖, 세상, 가식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눈이 없는 것이 이것을 잘 나타내 준다 모딜리아니의 사람들은 눈동자가 안으로 향해 있다 흰자위만 보인다 그의 그림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사람들의 내면의 세게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당시 세잔과 함께 현대미술의 큰 획을 그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