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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야수파로 분리된다 르네상스 이후 내려온 그림의 형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의 작품이 그전까지의 화풍과 어떤 변화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야수파의 화파가 미술계에 등장하게 되는 배경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마티스의 생애 작품 설명 야수파

 

마티스의 생애

앙리 마티스는 1869년 프랑스 북부의 카토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곡물상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아마추어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릴 때에는 별로 그림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법률사무소의 서기로 일을 했다. 그런데 그가 21살의 나이에 맹장염을 앓게 된다. 그리고 그 시기에 어머니가 선물한 물감과 그림 그리는 방법에 대한 책을 읽게 되고 그는 그 계기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시작된다 그가 23살에 되던 해에 그는 국립고등 미술학교에 에 들어간다 당시 그곳의 교수인 귀스타브 모로는 마티스에게 "마티스 자네는 회화를 단순화할 거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1896년 그의 나이 27세에 그는 국립미술협회가 주최한 살롱전에 그림 4점을 출품하고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1905년에 열린 살롱 도톤느 전시회에서 최고의 화제작은 마티스였다. 그는 모자를 쓴 여인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그전의 초상화와 완전 다른 초상화를 그렸다. 그의 작품은 아내를 그린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의 그림은 그전과 다르게 강렬한 원색을 너무나 과감하게 사용했다 선과 형태도 아주 거칠고 얼굴과 모자 그리고 드레스의 배경까지 원색으로 덮였다 마치 마구 치한 것 같은 충격적인 그림이었다 이 그림을 본 당시의 전시회 평혼가 들은 특히 루이 복셀은 마티스와 드랭을 두고 야수들이라고 표현을 했다 그래서 등장한 게 야수파(Fauvism, 포비즘)이다. 바로 이제 20세기에 미술계에 새롭게 등장한 화파의 이름이다. 

마티스 부인의 초상

마티스는 모자를 쓴 여인을 발표한지 몇 개월이 지난 후에 다시 그의 아내를 그린 마티스 부인의 초상을 들고 나타났다 이 그림에 마티스의 부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름답다거나 우아한 모습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그림에 그의 아내는 알롤달록한 그림으로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물어보았다. 왜 부인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냐? 고 그 물음에 대한 마티스의 대답은 나는 그림을 통해 아내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아름다운 그림을 상상할 때 모네를 떠오른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이다. 그의 그림에 양산을 든 여인이라는 작품에 초록색 양산을 든 여인은 머리카락이 검정색, 파란색, 초록색 등 다양하게 표현된다. 햇빛에 색이 다르게 보이는 인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 그림과 대조적으로 이 마티스의 그림은 빛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와는 전혀 상관이 없게 그려져 있다. 얼굴에 온통 주황색, 보라색, 녹색의 여러 가지 색깔로 어찌 보면 어린아이들 같이 색을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린 모양의 색이 나타난다 바로 야수파의 그림의 특지이다. 야수파 화가들은 색에서 탈피하여 자기가 색칠하고 싶은 대로 색을 맘대로 쓰는 사람들이다 입술이든 코이든 녹색을 칠하고 싶은 색을 쓰면 되는 것이다. 색에 구애받지 않고 칠하고 싶은 색으로 칠을 하는 것이다. 

마티스의 붉은 방

마티스가 그린 작품중 붉은 방을 보자 이 그림에는 원색의 방 안에서 여인이 식탁을 차리고 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온통 그림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현실에서는 온 방이 붉은색의 방은 없다 식탁이든 벽이든 테이블 보이든 다 붉은색이다. 그래서 어디가 식탁이고 어디가 벽이고 구별이 없어진다. 형태를 명확하게 그려내지 않고 마티스는 모든 그림에 형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듯 그의 그름은 구별이 없다. 그리고 왼쪽 위부분의 창은 이게 창문인지 액자인지 모호하다. 이 붉은 방에는 명암의 표현이 사라졌다. 원근법도 사라졌다. 그림의 공간은 2차원적이고 실제로는 3차원인데 세잔 이전까지의 회화는 항상 사실을 공간에 담으려고 노력을 했었다. 그런데 3차원의 사실 공간을 2차원의 공간인 그림에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3차원의 사실 공간을 2차원의 그림 공간에 담을 수 없기에 이 시도를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야수파의 그림의 특징은 원금감도 명암도 다 사라지고 깊이감도 없는 그림이 탄생하는 것이다. 

집에 벽지도 빨갛고 식탁도 빨갛고 실재로 이런 집은 없다. 예전의 화가들은 자연의 색깔을 화폭에 담고 사실을 그림으로 실감 나게 옮기려 노력을 했지만 마티스를 비롯한 야수파 화가들은 자연의 색이 아니라 자신만의 색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바로 야수파는 색에서 해방된 것이다. 자연과 사실의 색을 화폭에 담으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칠하고 싶은 색을 칠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에서는 원색의 파란 하늘을 우린 본 적이 없다 그냥 하늘이 아무리 맑아도 원색의 파랑새이 아니라 빛에 따라 옅은 하늘색, 흰색, 파란색, 등이 어느 정도는 있게 된다. 

그런데 마티스는 원색을 마음껏 가져다 그림을 그리고 칠한다.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이게 마티스의 생각이다. 마티스의 ㄱ림은 사물은 단순하다 사실 공간에서 사물은 형태가 단순하지 않다. 사실 공간에는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원형은 그리 많지 않다 자연물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원색 과 단순한 형태도 없다 단지 명암과 원근은 있다. 마티스는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사실 공간을 재현하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원근과 명암을 표현하지 않고 사실 공간에 없는 원색과 단순한 형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통 즉 르네상스 이후의 내려오는 학풍과는 다른 형태의 그림인 것이다. 

타니스의 춤2, 추락하는 이카루스, 열린 창문

춤 2는 실제로 보면 대단히 큰 작푸이다. 마티스는 이 작품에서 자기가 원하는 원색을 가져다가 과감하게 사용했다. 살마들의 모습은 매우 단순하다 얼굴도 단순하고 머리카락 팔뚝 엉덩이 발도 다 단순하다 원근과 명암이 없고 원색을 사용하여 전형적인 야수파 그림의 형태이다 단순한 색과 형태로 원무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러시아 사람 미술품 컬렉터인 세르게이 슈 추킨 이 1909년에 모스크바 자신의 저택의 계단의 옆벽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매우 단순하고 율동감이 느껴지도록 표현했다. 원무를 추는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의 위치를 달리 표현하였지만 통일감이 있고 원색의 그림으로 힘이 느껴진다. 

마티스는 1939년에 70세의 나이에 아내와 이혼하였다 그리고 2년후에 그는 1941년에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았다 그 이후 그느 거의 침대에서 누워 보냈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가 힘들어지자 가위로 색종이를 오려 캔버스에 붙여 작품을 만들었다. "가위는 연필보다 더 감각적이다"라고 펴현했다. 마티스가 병상에서 만든 작품들은 절망이나 슬픔이 아니라 어린아이 같이 쾌할라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말년에 마티스가 색종이로 만든 작품 추락하는 이카루스를 보면 색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형태를 잘 살린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 이카루스는 절대로 너무 높이 올라기자 말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다가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뜨거운 햇볕에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이카루스의 주변에는 새의 깃털이 여기저기 날리고 있다. 

마티스의 열린 창문도 마찬가이다. 방에 창문이 활짝 열려있고 그 창문으로 작은 정원이 보인다 그냥 보아도 야수파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야수파의 특징은 자신의 마음대로 색을 칠하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실제로는 햇살이 들어오는 곳이 훨씬 밝아야 되는데 마티스는 이 그림에서 햇살이 들어오는 곳보다 그 옆을 더 밝은 색으로 색칠했다. 자기가 칠하고 싶은 색으로 그린 것이다. 카메라는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야수파는 색에서 해방된 것이다. 보이는 색깔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먹은 색깔을 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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