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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틸레스키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이다. 그녀는 화가였던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아버지 조수로 일하면서 그림을 배웠다. 젠틸레스키는 주로 성경의 내용과 신화의 내용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젠틸레스키의 생애 및 그녀의 작품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젠틸레스키 생애 및 작품 설명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젠틸레스키 생애

젠틸레스키는 1593~1656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0대에 이미 그림의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이다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그녀의 재능을 이미 알아보았고 그녀를 가르침으로 달이 화가로 잘 자라도록 밑거름이 되었다

그녀의 나이 12살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젠틸레스키는 미술학교를 진학하여서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로마로 가서 자신만의 작품을 선보이며 화가로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습니다.

그녀는 로마에서 Franciscus Romanus라는 유명한 화가의 제자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에는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화가들과 함께 작업들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녀의 다양한 환경에서 사람들과 교제하면 배운 경험들은 다양한 예술적 기법과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배웠고 이를 자신만의 작품에 적용했습니다.

그녀의 그림의 특징은 내면을 표현하는데 누구보다 깊이 있는 표현 방식입니다. 빛과 그림자를 잘 대조시켜서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데 이런 기법은 당시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과는 다른 기법입니다. 그녀는 이런 인물들의 감정을 극대화하는데 뛰어났습니다. 이런 그녀만의 특별한 기법이 세계적으로 그녀의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이런 강렬한 대비와 독특한 조명 효과를 통해서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는 게 특징인데 이런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극대화시켜서 그린 작품 중 하나가 빛의 심인의 유화입니다.

이 작품은 그녀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미술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그녀는 나중에 피렌체 출신 화가인 피란토니오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녀는 당시 여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남편과 떨어져서 여행도 많이 다녔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그녀의 작품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페미니즘 분야에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여성이 보이기 위한 몸으로서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능독적인 모습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평가를 받습니다.

젠틸레스키 작품 설명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1614~1620년에 걸쳐서 그린 그림입니다. 캔버스에 유채화로 크기는 158.8*125.5cm 입니다. 지금은 이탈리아 나폴리 키포디몬테 박물관 소장입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 유디트는 유대인 여자입니다.

그림의 배경은 앗시리아 적장이었던 홀로페르네스가 유대 왕국을 침략했을 때 그를 유혹하여서 목을 잘라 죽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림이 매우 사실적이고 잔인하게 보입니다. 유디트와 그녀를 돕는 하인이 합심해서 적장의 목을 자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잔인합니다.

목에서는 붉은 피가 흘려 나옵니다. 이 그림의 등장하는 인물은 사실 그녀의 삶의 배경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가 17살이던 때에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그녀의 미술 선생인 아고스티노 타사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그녀는 여자로 감당하기 힘든 여러 수치스럽고 힘들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강간한 아고스티노 타시는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타시는 수감 생활을 고작 8개월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림을 보면 그림의 유디트의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비장하고 담대한 모습인지 사실 이 그림의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은 강간자인 아고스티노 타시이며 목을 자르는 유디트는 그녀 자신의 얼굴입니다. 남자의 알굴을 움켜잡고 힘 있고 강인하고 목을 잘라 버리는 모습에서 그녀의 당찬함과 강인함이 보입니다.

이 그림을 접한 강간 당사자는 이 그림을 보고 사색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페미니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카라바조의 작품인 똑같은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가 1598~1599년에 완성한 그림입니다. 크기로는 144*195cm 이며 지금은 이탈리아 로마 국립고전 회화관 소장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유디트의 모습이 강인하고 당당한 모습이 아닌 연약하고 아름다움 소녀의 얼굴입니다

오히려 그녀를 도와주는 하녀도 젊은 여성이 아닌 늙은 노파입니다. 오히려 이 늙은 하녀로 인해서 젊은 유디트가 더욱 돋보입니다. 젠틸스키 그림과 같이 카라바조의 그림도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어 그려진 화풍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티와 카라바조의 그림의 주인공 유디트의 모습이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카라바조의 유디티는 뭔가 그녀가 움츠리는 모습으로 그녀의 몸이 뒤로 조금 떨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의 당차고 남자에 대한 철저한 복수심에 불타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카라바조의 유디트는 하염없이 여리고 가녀린 그녀의 모습에서 아주 미적으로도 아름답고 순종적인 모습의 유디트가 그려져 있습니다.

강함과 반대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그림의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이 화가 자신 카라바조의 얼굴을 그려 넣었습니다. 당시의 사고뭉치 카라바조가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음으로 인해서 자신에 대한 자학적인 모습입니다.

클림트의 유디트 살로메

현대 화가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구스타프 클림트 입니다. 이 그림은 1909년에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178*46cm 크기입니다. 지금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현대 미술갤러리 소장입니다.

이 그림에서 특징은 지금 보았던 2편의 그림 젠틸레스키와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나타났던 생동감 있고 현실감 있는 역동성은 사라져 있습니다. 남자의 목을 칼로 자인하고 잘라버리는 끔찍한 장면도 피가 솟구치는 잔인함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림에서 에로티시즘이 넘치고 단지 상징성만 담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림의 아래 부분을 보면 피가 솟구치거나 칼로 목을 잘라버리는 이런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목이 잘린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이 숨어 있듯이 보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강인함과 복수 결연미 애국심 역동성 보다 유디트의 새로운 모습으로  재해석되어 그려졌습니다.

그녀는 미의 화신 에포티시즘의 화신으로 그림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미술은 누가 어느 시점에서 어느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서도 해석이 달라지고 작가의 의도와 시대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대에 맞게 미술이 새로운 시각으로 옷을 입고 재해석 함으로 더욱 멋진 그림의 매력으로 우리는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젠틸레스키는 여러 이유로 여러 평가를 받았는데 능동적인 그림을 통해서 페미니즘의 분야에서도 그녀의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어지고 카라바조의 작품에 영향을 받음으로 그녀가 보여준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조성 그리고 풍성한 색감을 통해서도 그전의 남성 화가들과는 구별되는 그림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녀의 이런 섬세하고도 감정의 변화까지 내면의 감정까지 잡아내는 디테일한 그림이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녀는 이 그림 말고도 여러 자사화를 많이 그렸는데 이런 자화상이 많은 이유는 당시 모델을 구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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