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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는 마네의 등장으로 인하여 르네상스 이후 30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아카데미 미술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예견합니다. 2011년에는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서 근대성의 발명자라는 부제로 에두아르 마네의 특별전이 열렸었습니다. 그 전시회 부제처럼 마네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미술의 혁명적인 대문을 연 화가입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마네의 생애 및 작품 설명 풀밭 위의 점심, 올랭피아

 

마네의 생애

마네는 파리의 잘 나가는 법률가 집안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대로 17살에 아메리카 항로의 수습선원이 됩니다. 그러나 그는 18살에 아카데미 역사화가인 쿠튀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갑니다. 27살에는 살롱전에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을 출품합니다. 1861년에는 겨우 입선합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낙선을 하였습니다. 1865년에는 올랭피아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사람들은 마네를 인상주의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인상주의로 분류하지 않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마네는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도 자신을 인상주의 화가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준 것만은 확실합니다.

 

마네의 작품 설명

피리 부는 소년, 제비꽃 장식을 단 베르트 모리조

마네의 작품 중 피리 부는 소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모델은 소년이 아니라 풀밭 위의 점심 올랭피아의 여성 모델인 빅토린 뮈라이 군악대 복장을 한 여자 모델입니다. 그림을 보면 입체감이 사라지고, 그냥 평평한 화면에 과감한 색채가 돋보입니다. 이렇게 마네의 특유한 화풍을 엿볼 수 있습니다. 쿠르베는 이 그림을 보고 마치 타로 카드의 그림 같다고 불평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모델의 포즈가 당시 타로 그림을 참조했다고 합니다. 제비꽃 장식을 단 베르트 모리조라는 작품은 검은 옷을 입은 모리조가 앉아 있고 그녀의 가슴에 제비꽃 장식이 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림 속 그녀는 이지적이고 차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의 특징은 세부 묘사나 명암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에 주로 검은색을 사용하여 그린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림의 모델은 마네가 가장 사랑했던 베르트 모리조입니다. 그는 그녀를 모델로 15점의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모리조는 프랑스 고위관료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화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공부하는 중이었습니다. 이후에 그녀는 마네의 남동생의 아내가 됩니다. 마네는 51세에 매독으로 사망을 하게 됩니다. 이 그림은 마네가 가장 아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외설과 예술의 차이

그동안 지성인들은 살롱에 모여 문학 역사 철학 음악 미술 과학등의 주제로 토론하고 서로 교류했던 공간입니다. 살롱은 귀족들의 저택과 궁정 같은 곳에 있었습니다. 주로 지성을 갖춘 귀족 부인들이 살롱의 주도했고 그들을 마담이라고 불렀습니다. 미술에도 살롱의 역할은 미술품을 공개하고 감상하고 비평하는 모임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정기적인 미술전람회들 뜻하게 되었습니다. 19세기 화가들은 살롱에 뽑혀 그림이 전시되어야 그림을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롱은 화가들의 등용문이 되어서 그들의 그림 가격도 올리고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풀밭 위의 점심

풀밭 위의 점심은 1863년 마네가 살롱전에 출품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전형적인 아카데미 화가들은 내 그림을 이런 그림과 함께 전시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tv나 라디오 같은 이런 매체가 없던 시절입니다. 바로 이런 살롱전이 이슈를 만들어 내는 공간입니다. 살롱전은 파리에서 해마다 열렸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화가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낙선자들만 따로 모아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거기에 출품된 작품이 풀밭 위에 점심입니다. 캔버스에 유채화로 208cm*264cm 1863년 작품으로 지금은 오르세 미술관에 있습니다. 이 작품을 사람들은 경멸하고 비웃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우산으로 내려쳐서 훼손하려고 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3m 높이에 전시해 두었습니다. 왜 부르주아들은 이 그림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을까요? 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풀밭 위에 점심을 16세기 베네치아 화가인 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작품을 보면 풀밭 위에 점심에서 여자는 은밀한 부분이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가슴이 훤히 드러나 보이고 아래쪽의 민감한 부분도 조금부입니다.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16세기에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그림만 보면 오히려 티치아노의 그림이 훨씬 자극적입니다. 그런데 마네의 그림은 19세기인데도 이 작품이 외설이라고 난리였습니다. 그것은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여신을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여신은 옷을 벗고 있어도 자연스러워 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마네의 벌거벗은 여자는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 아니라 요정도 아니고 동시대 여자인 빅토린 뷔랑입니다. 이 여자는 화가이자 모델이고 마네에게 화가로 영감을 주는 뮤즈였습니다. 이게 이 그림이 외설이라고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당시의 부르주아 입장에서는 이 그림이 매우 보기 민망했습니다. 마네의 그림에 등장하는 부르주아들이 풀밭에서 벌거벗은 여자를 불러 놓고 식사를 하며 술이나 마시는 사람들로 표현해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랭피아

올팽피아는 1865년 작품으로 이 작품도 당시에 완성도가 떨어진다 손이 두꺼비 손 같다 쉬심도 없다는 등 혹평이 받은 작품입니다. 마네의 그림은 고야의 옷 벗은 마야를 연상시킵니다. 이 올랭피아는 기존 회회의 전통과 질서를 파괴했습니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평명적입니다. 그런데 티치아노의 그림과 비교해 보면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보면 원근법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마사초 이후에는 거의 모든 그림에서 원근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마네의 그림은 이런 전통을 벗어나서 원근법의 원칙을 깨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첫눈에 이전 시대의 그림과는 확연히 다르게 표현된 게 보입니다. 이런 특징이 바로 인상주의입니다. 올팽피아의 작품을 보면 올랭피아는 하얀 피부를 강조하기 위해서 하녀는 흑인으로 까맣게 그려진 작품입니다. 침대 시트는 하얀색이고 고양이는 또 완전히 검은색입니다. 명아 보다는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를 통해서 색채를 다르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여신이고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미녀입니다. 그러나 마네의 올랭피아는 창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창녀들은 머리에 꽃을 꽂았습니다. 찾아온 손님이 흑인 하녀를 통해서 꽃다발을 전해주고 있고 그림에 보면 위로 솟구친 고양이 꼬리가 바로 남자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장치라고 합니다. 교양 있고 고상한 척 살아온 이 시대 남성들을 심히 불편하게 하는 그림입니다. 당시의 시대를 보면 당시의 부르주아들은 미모의 정부를 거느리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거나 당시의 성을 파는 창녀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부르주아 계급에서 여성의 미의 기준이 창녀였던 것입니다. 이전의 미는 고전인 미였다면 이제는 현실의 미를 추구한 것입니다. 미의 기준이 현실적으로 바뀐 것입니다. 고야의 옷 벗은 마야의 눈빛과 같이 마네의 올랭피아도 당당하게 앞을 응시합니다. 근대의 눈빛입니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이 작품은 카페의 바에서 여종업원이 술병들이 놓여 있는 카운터에서 양손을 짚고 서있습니다. 뒤의 거울에는 그녀의 뒷모습이 비치고 그녀에게 말을 거는 남자의 모습도 보이고 거울에는 그녀 앞에 펼쳐져 있는 화려하고 시끄러운 카페 홀의 모습이 비칩니다. 이 카페 폴리 베르제르는 당시의 극장식 카페로 당시 가장 화려하고 큰 무대를 갖춘 무대에서 춤이나 서커스 공연도 했던 카페입니다. 이 당시의 여종업원들은 필요시 몸도 파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그녀는 앞의 탁자에 팔이기 위해 전시해 놓은 맥주들처럼 그녀 또한 전시품의 상품이기도 한 것입니다. 거울에 비친 남자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거울 앞의 모습은 그녀의 모습을 다르게 표현합니다. 거울 속 그녀는 등이 굽어 있고 위치도 어긋나 있습니다. 여종업원의 얼굴은 지치고 지루하고 무관심해 보이는 얼굴입니다. 그녀는 앞을 보고는 있지만 시선을 약간 내리깔고 있습니다. 그녀 앞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나름 화려한 여유를 부립니다. 하지만 군중 속에 그녀는 지치고 외로워 보입니다. 근대의 공허한 근대인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마네의 작품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인상주의에서 10년 넘게 다루기 시작한 19세기 도시의 여가생활과 볼거리의 연장선상의 있는 그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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