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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하면 모네입니다. 모네야말로 인상주의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네는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자신이 인상주의라 화가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르느와르 같은 경우에도 신고전주의 화풍으로 나중에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모네는 인상주의 화가로 처음부터 끝가지 남아 있었습니다. 제1회 인상주의 전서회부터 평생을 인상주의로 남았습니다.

 

 

모네의 생애

모네의 인생을 보면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5살에 가족가 함께 센강 하류의 도시인 르아브로로 이주해서 19살까지 살았습니다. 그가 그렸던 아르장퇴유 푸아시 베퇴유 지베르니는 모두 파리와 르아브르 사이의 센 강가에 있습니다. 그는 19살에 화가가 되기 위하여 파리로 왔습니다. 르느와르, 피사로, 시슬리, 바지유등과 그곳에서 교류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25살의 청춘의 시기에 그는 모델이었던 카미유 동시유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들 장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모네의 인생은 그리 쉽게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각종 살롱전에서 계속하여 떨어졌고 물감을 살 돈도 부족한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1870년에 둘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몇 년 후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살림이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네의 작품 설명

인상: 해돋이, 생 라자르 역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를 보면 새벽녘의 희뿌연 안개 사이로 해가 돋는 인상을 포착한 그림입니다. 모네는 이 작품의 제목을 풍경이란 오직 인상, 즉물적인 인상이어서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고 설명합니다. 캔버스 가운데 붉은 해가 뜨기 시작하고 하늘은 노란색 주황색 파란색 흰색등이 어지럽게 흩날립니다. 그 태양빛을 받은 바다는 불게 물들기 시작하고 잔잔한 바다 물결은 태양의 빛에 따라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그 바다 위에 고깃배들이 떠 있습니다. 새벽녘의 해돋이의 인상입니다. 모네는 일기에 따라 빛이 일으키는 색깔 변화를 빠른 붓질로 캔버스에 담아낸 것입니다. 폴 세잔은 모네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눈인가"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평판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모네가 이 그림을 1872년에 완성해서 1874년에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했는 에 이 전시회를 관람한 비평가 루이 드로이는  이 그림을 보고 "벽지의 완성도가 차라리 훨씬 높겠다"라고 아무 생각 없이 한순간이 인상만을 그리는 얼간이들이라고 비아냥 거렸습니다. 왜 이런 평가를 가질 수밖에 없었냐면  그 당시의 주류 미술계는 아카데미 미술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때로는 수년에 걸쳐 그림을 정교하고 완성도 높게 그렸습니다. 그런데 모네의 이 그림은 붓질만 몇 번 쓱쓱 한 것처럼 보이기에 붓칠 몇 번 한 그림이라고 폄훼한 것입니다. 모네의 생 라자르 역은 그가 그 기차역에서 산적도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증기기관 차에서 뿜어 나오는 뿌연 연기와 수증기, 그리고 햇살을 그 순간을 잘 포착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햇빛의 각도와 빛의 세기에 따라서 날씨의 변화에 수증기의 색과 구도가 바뀌는 순간의 인상을 잘 표현한 그림입니다. 

양산을 든 여인

양산을 든 여인은 1875년에 그린 그림으로 가족의 생활이 조금 안정화될 때 그린 그림입니다. 초록색 양산을 쓴 카미유가 모네를 돌아다봅니다 옆에는 귀여운 장이 보이고 따사로운 햇살과 산들거리는 바람과 들꽃들이 조화롭게 너무나 평화롭게 보이는 행복한 나의 인상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의 아내 카미유는 1879년 3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모네는 사랑하는 아내의 임종을 맞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양산을 든 여인은 캔버스에 유채화로 100cm*81cm 1875년작으로 지금은 워싱턴내셔널 캘러리 소장입니다. 이 그림과 비슷한 그림은 1886년 그린 두 번째 아내의 딸인 수잔을 모델로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비슷한 장면의 그림이지만 여자의 얼굴이 더욱 모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양산을 쓴 여자의 얼굴과 형태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떤 부분은 검정 어떤 부분은 파랑 아래쪽은 양산의 녹색이 비쳐 녹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빛과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중세의 화가들은 황금색으로 르네상스 화가들은 파란색으로 그리고 인상주의 화가들은 야외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하늘은 파란색 붉은색 하얀색 회색등 다양하게 그렸습니다. 이제 인상주의 화가들이 실제로 본 하늘을 그립니다. 빛의 양과 각도 거리에 따라서 형태가 없어지고 색채만 남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상주의 화가들을 색채의 마법사 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네가 바로 이런 이산주의 문을 두드렸다면 모네는 이제 그 문을 활짝 열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연작 시리즈

인상주의는 색책의 마법사답게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색을 담은 천체들입니다. 자연의 색채를 계속해서 되풀이해서 그려냈습니다. 같은 장소에도 아침 점심 저녁시간 때가 다 각기 다르듯이 이런 변화를 그리다 보니 연가 시리즈가 탄생한 것입니다. 첫 번째 연작은 노적가리입니다. 이 그림들은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 그림들은 당시에 비싼 가격에 팔렸습니다. 모네는 포플러 루앙 대성당등의 연작도 그렸습니다. 루앙 대성당 연작은 서쪽 정면에 이젤을 세우고 그렸습니다. 1892년부터 1894년까지 다른 날씨 다른 시간대에 각각 그린 것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또는 맑은 날과 흐린 날 순간의 빛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각각 표현한 것입니다. 노적가리 루앙 대성당은 연작으로 엄청나게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수련

모네의 그림 하면 수련입니다. 이 그림은 무명의 가난한 시절을 보내던 그가 43살 되던 해에 파리 북서쪽에서 약 80여 km 떨어진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제 그의 그림은 천정부지로 가격이 상승하였고 이 집의 연못을 개조하여 수련을 심고 일본식 둥근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86살까지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여 년을 살면서 노적가리 포플러 루앙 대성당 등의 연작을 비롯해 그의 예술을 대표하는 수련 연작을 그렸습니다. 수련 연작은 200여 점이 넘습니다. 그리고 크기도 3m가 넘는 대작도 40여 점이나 됩니다. 그의 노년의 시기에는 연못과 수련만 집중해서 그렸습니다. 그 안에 그가 평생 탐구했던 빛과 물 대기의 세계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의 노년의 절정기 때 이 수련은 마치 추상화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말년에 백내장을 앓고 있어서 그림의 색마저 그가 보이는 모습으로 더욱 간결하게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치는 모습으로 그린 것입니다. 수련 연작을 보면 누구나 그의 그림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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