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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의 대표화가인 일리야 레핀의 생애와 작품을 만나 보고자 한다. 그가 추구했던 예술의 세계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는 러시아 역사에서 예술가 딱 3명을 뽑을 때 꼽힌 3인 중 한 명이다. 문학에는 톨스토이 음악에는 차이코프스키 미술에는 일리야 레핀이다.

 

일리야 레핀의 생애 및 작품 설명

 

일리야 레핀 생애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이동파 중 한명이다. 그는 1844년 우크라이나 작은 도시 추구예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 하급군인이었다. 그는 미술에 재능을 보여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에서 이반 크람스코이에게 사사를 받고 1871년에는 성경의 내용 중 야이로의 딸의 부활이란 작품으로 아카데미 졸업작품 전에서 금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다 이후에 그는 일급 공식화가 자격을 취득하고 우수 연수생으로 6년간 유학의 기회를 잡는다. 그는 이동파이다 이동 파는 1860년대에 등장해서 1920년대까지 전시회를 열었다. 단일 화파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화파이다. 그가 태어날 때에는 러시아는 여전히 전제군주인 차르 시대였다 러시아는 후진 농업국인데 반해 당시의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는 산업혁명과 시민 혁명을 통해서 부르주아 세력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때이다. 당시의 프랑스에는 르느와르 모네 드가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활동하고 레핀도 유럽에 가서 그림을 접했다. 초상화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레프 톨스토이 니콜라이 고골 이반 투르게네프 등의 저명한 러시 문학가뿐만 아니라 왕족과 귀족등 상류층 또 여성 문화계의 모든 유명 인사들이 레핀의 모델들이었다. 그는 1894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 교수로 임명이 되었다. 레핀이 54살의 나이에 핀란드 대공국의 쿠오칼라로 이주해서 대부분의 생애를 여기에서 보내다가 1939년 9월 29일에 그곳에서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일리야 레핀의 작품 설명

폭군 이반과 그의 아들 이반, 1581년 11월 16일

이 그림의 경우에는 그림에 등자하는 폭군 이반인 이반 4세이다 그는 이반 뇌제로 불린다 벼락 황제라는 뜻이다 폭군이었던 ㄱ가 며느리의 옷차림이 단정하지 못하다고 하여 화를 내며 밀었는데 그만 유산을 하고 만다. 이반 4세가 자신의 황태자인 이반을 지팡이로 폭행해서 죽인 장면을 상상해서 그린 작품이며 제목에 1581년  11월 16일은 그 사건이 발생한 날짜이다 이그림을 그리기 이전에도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림에는 폭군 이반이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있다 이반의 눈을 보면 눈이 절망을 나타낸다 이 그림에 이반 4세의 모델은 시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어느 노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렸고 황태자 이반의 모델은 당시 레핀이 아끼던 작가 프세볼로트 가르신의 얼굴에서 따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레핀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반 4세는 러시아에서 다시 재평가되었다. 이전까지는 이반 4세는 단순한 폭군의 이미지였다면 이 그림에서 이반 4세는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묘사되어서 인간미가 느껴진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반 4세를 또 다른 이미지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단순한 폭군이 아니라 입체적인 면모를 가진 군주로 재평가를 내리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러시아 미술에서는 이 작품이 명작으로 남게 되었고 레핀의 의도와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

이 작품은 1870~1873년 작품으로 지금은 국립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장이다. 이 그림에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은 어깨에 줄을 메고 힘겹게 배를 끌어당기고 있다. 육체적 노동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볼가강은 수심이 얕아서 사람들이 힘으로 끌어서 배를 정박하게 했다. 그런데 배의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 고작 그림에 등장하는 소수의 인원으로 끌기에는 너무 힘겹게 보인다 바로 작가는 인부들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그들의 삶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그림은 바로 레핀의 리얼리즘의 대표작품이다. 이런 그림들이 당시의 부르주아들에게는 달갑지 않았았을 것이다. 그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선호했고 그래서 이동 파는 자신들의 그림을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직접 가져가서 보여주는 것이다. 레핀도 실제로 배를 끄는 인부들 중에서 그림의 모델을 찾았다. 맨 앞에 사람은 수도사 출신 리더로서 지혜롭게 보이는 인물이다. 중간에 몸을 숙인 사람은 앞을 응시하며 그 뒤의 소년은 먼 곳을 바라본다 이 의도는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 주는 것이다. 수도사는 러시아의 유구하고 지헤로운 역사를 상징하고 앞을 바라보는 인물은 현실의 러시아의 절망 현실을 투쟁의 모습을 보여준다 먼 곳을 바라보는 소년은 앞으로 나아가는 러시아의 미래를 상징한다 

쿠르스크 현의 십자가 행렬

이 작품은 러시아의 종교의식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작품을 살펴보면 그림 맨 앞쪽에 귀부인이 금색의 옷을 입고 화려한 이콘을 들고 걸어오고 있다 그 앞에는 성직자가 넋 나간 표정으로 걷고 있다 그리고 앞쪽에서는 두 여자가 빈 곽을 을 들고 행렬의 맞추어 걸어가는데 그녀들은 얼핏 보아다 귀부인은 아니다.  이 그림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맹인과 거지들이다 경찰이 앞으로 나가는 그들을 제지하는 장면을 통해서 현실 세계의 냉혹함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는 가장 어렵고 연약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야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인생은 그렇지 못하는 부조리가 있다 경건해야 하는 성직자는 총명함을 잃은 나태한 표정과 눈빛이고 세상의 넉넉하고 부유한 귀분인 들에게 모든 복이 쏠리는 것이다. 이 그림은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처럼 종교행렬을 숲 아래에 배치하려고 했었는데 르느와르의 그림처럼 나뭇잎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일리야 레핀은 르느와를 그림들을 참고하려고 했었다. 레핀은 숲과 빛 떡갈나무 대신에 맹인과 거지의 모습으로 이 그림을 살렸다 레핀의 뛰어난 그림의 자질이 러시아 사회의 민중의 삶을 자신만의 기교로 화폭에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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