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코의 생애 및 작품 설명, 메두사 호의 뗏목

낭만주의 시대를 풍미하며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제리코 그는 혁명의 실패에 따른 좌절감과 인간의 내면세계 그리고 감정을 자신의 작품에 표출했다. 그는 프랑스 화가이며 고전주의에서 해방된 낭만파의 선구자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그의 극적인 감동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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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코의 생애

1793년 8월 31일 태어난 그는 1824년 8월 31일의 짧은 인생을 살다간 프랑스 화가이다 제리코는 루앙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과 기마에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부르주아 계급 출신으로 귀족의 자식들이 다니는 학교를 다녔다.

그의 동문으로는 들라크루아가 있다. 그는 다비드 풍으로만 신중히 그린 계랭에게 회화를 배웠다. 그는 낭만주의 화가의 전형적인 사람이다. 그는 평소에도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여자관계는 복잡하였고 우울증 자살기도 파산 등 많은 인생의 파도가 있었다 짧은 33살에 사망했는데 생정에 그는 정열적인 색채를 강조한다.

그는 나중에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더 배웠는데 특히 로마에 가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에 감명을 깊게 받았다 미켈란젤로처럼 그런 화풍을 동경하며 화풍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고국으로 귀국하여 1819년에는 그의 대작 에듀즈 호의 비극을 알고 발표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질그릇 굽는 가마, 메두사호의 뗏목, 1819, 에프솜의 경마, 1821, 미친 여인, 1822등이 있다.

 제리코 작품 설명

메두사 호의 뗏목

메두사 호의 뗏목은 1818~1819년 작품으로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 소장이다. 이 그림은 실제의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1816년에 여름 프랑스에서 식민지인 세네갈로 향하던 배에서 과학자, 의사, 기술자, 군인, 일꾼 등의 400명이 타고 출발했으나 암초에 걸렸다 배가 난파하는 가운데 선장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 군인등은 구명정에 탔다.

그리고 나머지 147명은 돛대 등을 이용에 만든 뗏목에 올라탔다. 그러나 대양에 나와 밧줄이 끊어져서 뗏목 위에서 물과 음식 때문에 피로 물든 싸움이 벌어지고 처음 구명정에 뗏목을 묶어 끌었지만 속도가 점점 느려지자 구명정에 탄 사람들이 줄을 끊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망망대해에서  뗏목에 버려진 사람들은 그 이후 13일이 흐른뒤에 발견되게 된다

그중에 15명만 살아 남고 그중에서도 5명은 얼마 지나서 모두 사망했다. 1817년 생존자 2명이 책을 집필해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뗏목에서의 생존은 지옥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죽이는 광기를 펼쳤으며 식인행위까지 이어졌다.

제키코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모든 생존자를 다 만나서 뗏목의 모양을 같게 만들었고 시체로 화실로 가져다가 그 경직 상태를 조사하고 병원을 방문하여서 죽은 사람의 시신을 연구하였다.

이런 극적인 장면을 인간 내면의 감정으로 그는 표현하고자 했다. 당시에는 실로 이런 장면을 떠올리기에도 충격적이고 쇼크 하다. 인생의 어두움을 다룬 그림들이 당시에 유행하기도 했다.

흰 말의 머리

제리코는 피에르 나르시스 게렝의 견습생으로 그림에 입문했으며 그의 스승 게랭은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구속하지 않았다 그는 고전주의만을 고집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도록 그를 가르쳤다 이런 스승의 가르침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던 제리코는 21살이 되던 해에 처음 파리의 살롱정에 지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호평과 함께 입상을 하게 된다. 그 작품이 돌격하는 샤쇠르다. 그림의 색채와 섬세한 움직임이 마치 전정터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생동감이 있는 작품이다 그가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던 것은 그는 승마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말을 타고 있는 말에 생동감을 잘 표현하였다. 말들의 그림들이 많이 있는데 그건 그가 말을 많이 관찰했기에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앞발을 들고 있는 말 동그랗게 커진 말의 눈 거품을 물고 있는 입 흥분한 코까지 말의 표정과 움직임이 디테일하게 표현되어 그렸다.

제리코가 입상한 작품 들 가운데에는 두 말들 회색말 말경주등이 있으며 흰 말의 머리 같은 경우에는 말의 얼굴만을 크게 그려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듯 말의 초상화처럼 보인다 또한 1814년에 그린 전쟁터를 떠나는 부상당한 기갑병에서는 패잔병과 말의 절박함 마저 담고 있다.

제리코는 말을 이토록 사랑했나 보다. 1821년의 작품 중 A House Frightemd by Lightning 작품은 야생마 같은 말을 그리기도 했으며 그는 말의 해부학이라는 책까지 쓸 정도로 말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실제로도 승마선수였고 그러므로 낙상으로 인하여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리고 합병증에 고생을 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에 감명을 받고 파리로 돌아와 그린 그림이 “기수 없는 경주”이다. 그 이후로 심취한 장르과 누아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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