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스케스 생애 및 작품 설명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평생을 궁정화가로 살아온 천재화가이다. 그는 바로크 시대 펠리페 4세 궁정화가였으며 1629년에는 1년 6개월 동안 미술공부 및 여행을 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살았다. 그의 작품 중 최고는 시녀들이다. 그의 작품들은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벨라스케스 생애 및 작품 설명 시녀들

벨라스케스 생애

벨라스케스는 1599~1660년의 생애를 살았다. 그는 스페인의 세비아 태생이다. 그는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이며 12살에서 6년 동안 프란시스코 파체코에서 그림 교욱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포르투갈계 유대인 출신의 변호사이다. 그가 어릴 때부터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좋은 직업을 갖도록 교육을 받았고 그는 언어학과 철학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12살에는 첫 스승을 떠나서 세비야 예술가이자 교사였던 프란시스코 파체코 아래에서 수습생으로 공부를 하고 그곳에서 세비야의 화풍과 비례와 원근법 등을 익혔다.

벨라스케스는 1628년에 외교관으로 스페인 왕궁을 방문한 루벤스를 보고 그를 롤 모델로 삼고 펠리페 4세는 그를 인정하게 됨으로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벨라스케스는 왕에게 있어 유능한 화가이자 궁정인으로 오랜 친구 사이였다. 1620년대에서 그는 서서히 명성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618년에는 그의 스승의 딸인 후안나 파체코와 결혼하였다. 그녀와는 두 딸을 낳았다. 그 이후 벨라스케스는 1622년에 사제였던 후안 데 폰세카의 추선서를 받고 마드리드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체코는 벨라스케스가 시인 공고라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부탁하였고 그곳에서 월계수 왕관을 쓴 공고라를 그렸다.

그의 초기에는 경건한 종교화를 많이 그렸지만 그는 서민의 일생생활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카라바조의 명암법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뿐만 아니라 벨라스케스의 채색기법을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부었다. 이런 기법은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한 번의 칠하기로 그림을 마감하는 기법이다.

벨라스케스에게 영향을 받은 화가들은 고야 마네 피카소 등 쟁쟁한 화가들이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화가 중에 화가로 불리고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네가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모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빛의 구도와 공간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힐 정도였다. 

벨라스케스 작품 설명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1649년 벨라스케스는 2번째로 이탈리아 여행을 갔다. 그곳에서 그는 2년종도 머무르게 되는데 그 사이에 그린 그림이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이다 이 그림은 1649~1660년에 걸쳐서 그린 그림이다. 캔버스에 유채화로 크기는 140*120cm이다. 지금은 도리아 팜필리 미술과 이탈리아 로마 소장 중이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릴 때 티치아노 등의 채색법과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 그림에서 등장하는 교황은 75살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이다. 그런데 교황의 얼굴이 좀 불편한 표정이다. 그림에서 보이는 교황의 모습은 날카로운 성격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교황의 복장의 망토 의자 망토 뒷 배경 모두 붉은색을 띠고 있다. 교황의 하의는 흰색으로 붉은색과 흰색의 명암의 대비를 시킨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 그림은 교황을 만날 시간이 없어서 잠깐의 모습을 보고 나서 빠르게 스케치를 한 후에 나중에 그림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옷과 세부묘사는 단순화하였고 대신에 교황의 모습이 강렬하게 등장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보면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그림 앉아 있는 궁전 광대의 초상에서는 광대의 모습이 웃기거나 초라하지 않고 그의 눈빛에서 강렬한 눈빛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그림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에서 교황의 모습 또한 심기가 불편한 모습으로 그대로 담아 놓은 것이다. 그는 누구이든 냉철한 모습으로 인물의 내면까지 표현하는 방법이 그에 강점이다. 

시녀들

시녀들 이란 작품은 그의 작품 중에도 최고의 걸작으로 불린다. 이 그림은 캔버스에 유채화로 크기가 무려318*276cm의 엄청난 크기이다. 지금은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마드리드 소장이다. 이 그림은 화면의 중앙에 마그리타 공주와 시녀들이 있다. 주인공인 마그리타 공주에게 가장 밝은 빛이 비치고 그림의 왼쪽에는 화가 자신 벨라스케스가 서있다.

오른쪽에는 광대와 개 그리고 호위병과 여자가 있다. 그림 뒤쪽에는 계단에 남자가 있다. 그리고 벽에는 그림이 걸려 있는 모습이다. 화면 앞쪽에는 큰 거울이 있다. 거울 속에는 왕 펠리페 4세와 왕비의 모습도 보인다. 이런 그림을 종합해서 그림을 설명해 보면 지금 벨라스케스가 커다란 캔버스에 붓과 팔레틀를 들고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앞쪽에서 왕과 왕비가 포즈를 취하고 서 있는 모습이 거울에 비친 것이다.

중심에 있는 왕녀 마르가리타를 포함해서 그림 속에 인물을 감상하는 사람 쪽으로 시선이 비쳐 있다. 이 그림 속에 벽에 그려져 있는 거울에 어렴풋이 비추는 것은 국왕 펠리페 4세 부부의 모습인데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그림 속의 인물들을 보고 있는 사람은 국왕이다. 거울이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한정된 공간을 뛰어넘어 또 다른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그림은 국왕의 집무실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벨라스케스의 검은 옷에 붉은 십자문장은 산티아고 기자단의 문장이다. 이 문장은 나중에 국왕의 특별한 조치로 그가 기사단에 가입되고 귀족에 봉해진 1659년에 그가 죽기 일 년 전에 다시 그려진 문장이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서 우울하고 바로크적 분위기인 작품이다. 그래서 바로크 시대의 최고의 걸작이라고 말한다.

거울을 보는 비너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는 1647~1651년에 걸쳐서 그린 작품이다. 캔버스에 유채화로 크기는 122/5*177cm이다. 지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영국 런던에 소장 중이다. 이 그림은 전에는 영국 요크셔의 록커비 저캑에 소장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이 록커비의 비너스라고도 불려진다.

그림을 보면 나체의 여인이 침대에 한옷도 걸치지 않고 있다. 앞에서 큐피드가 거울을 들고 있고 거울에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뒷모습이 매우 매혹적으로 보이고 침대의 시트는 검은색으로 커튼은 붉은색으로 그려져서 그림에 관능미를 더해지게 표현하였다. 비너스의 아름다운 뒤태와 거울에 비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또 다른 그녀의 자아를 보게 한다

이 그림의 관증적인 포즈를 하고 있는 모델은 사실은 스무 살이던 플라미니아 트리바라고 한다. 비너스의 뒷모습과 큐피드가 받쳐 든 거울 속의 얼굴이 대조되고 있고 신화 속에 나오는 비너스와 귀여운 큐피드가 그림을 좀 더 친근감을 준다. 이 그림은 1914년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였던 메리 리차드슨이 동료의 석방을 위해서 이 그림을 칼로 훼손했었다.

그래서 그림의 비너스 등에는 칼의 흔적이 남아있다. 안타까운 것은  벨라스케스가 4개의 누드화를 그렸는데 그중에 이 그림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이 누드화는 가장 유명한 작품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스페인 미술사에서 여성의 누드를 다룬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이다.

스페인 종교 재판소가 누드화를 용인화자 않았고 이 그림은 누드화이지만 사실 큐피드 때문에 미의 여신 비너스로 신화에 등장한 여신으로 누드화를 그린 것을 피하기 위해서 신화 속의 인물로 위장 그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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